수원촛불에 매주 나오던 '명랑 길'님이 지난 6월 홍성으로 이사를 갔다. 홍성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지 3개월, 그 느낌을 전해왔다.
필자, 명랑길님
주말부부로 살아야 하는 우리 부부의 특별한 상황으로 선택한 부분도 있지만 앞으로도 몇 년 간은 주말부부를 유지해야 해서 굳이 도시가 아니어도 가능하다는 결론이었다.
우리는 오랜 벗들이 있는 홍성을 선택했고, 그 친구들이 홍성군 홍동면이라는 작고 아름다운 마을에 살고 있었으므로 우리 또한 읍내에는 집을 얻어 살고 대부분의 시간은 홍동에서 보내고 있다.
이사를 온 후 7,8월은 거의 놀고 먹는 데 시간을 보낸 듯 하다. 도시에 살 때에는 한 번도 찾지 않았던 친구들과 가족들이 우리 집을 방문하였고, 덕분에 우리는 주말마다 근처 안면도 바다를 마실 다니듯 다니거나 좋은 풍경을 찾아다녔다. 어디에 가면 맛집이 있는지 궁리하곤 했다.
물론 선배의 집에서 음식을 해 먹는 시간이 더 많았다. 작은 텃밭에서 얻은 훌륭한 먹거리에 대해 감탄하며 밭에 김장배추를 몇 포기 싶을까 하고 의논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20년 가까이 살던 수원은 도시가 주는 편안함과 안락함은 있었지만 늘 고단함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직장생활은 거의 서울에서 했는데 하루에 왕복 3시간 가량의 출퇴근시간을 허비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지금은 아침마다 시골의 논둑과 은빛 억새들이 휘날리는 것을 보고 출근을 한다. 얼마 전 황금빛 들판이 추수로 인해 빈 논들이 된 것이 조금 쓸쓸하지만 그것 또한 더없는 풍경이리라.
아침에 눈을 뜨고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소비의 연속인 도시 생활은 누구에게나 버거운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 더욱이 가난한 이들에게는. 나 또한 도시가 주는 소비문화의 유혹을 뿌리치는데 꿋꿋하지 않았었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 하는. 그래서 남과 나를 비교하면 할수록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도시를 벗어났던 가장 큰 이유는 도시에서 사는 것이 답답했지만 아주 못 견디게 힘들어서라기보다 어떻게 사는 삶이 행복할까 하는 화두가 나를 이곳으로 이끈 것이 아니었을까?
나를 포함하여 남편, 친구와 선후배들은 주중에는 자기가 맡은 일에 충실히 임한다. 나도 9월부터 작은 출판사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밀로 빵을 구워 지역민들과 나누는 선배가 있고, 한 후배는 시골에 찾는 아이들과 빨간 장화를 신고 논에 사는 생물들을 함께 만나러 다닌다. 그리고 남편은 서글프지만 도시의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일이 무척이나 싫은 일은 아니어서 아직은 열심히 잘 견디고 있다. 그렇지만 주말에는 거의 반 야생적 모습을 하며 텃밭에서 일을 한다.
고구마를 캐고 있는 명랑길님의 남편. 고구마 수확이 별로 였답니다. ^^
주말이면 우리는 어김없이 만나 술 한 잔 마시며 밀린 이야기를 쏟아내기도 한다. 저마다 요리솜씨를 뽐내기도 하는데 남자들이 요리를 하면 찌개인지 국인지 모를 음식이 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맛은 일품이라는 데 마음은 모아준다. 한 선배가 사는 집이 전형적인 시골농가여서 몸이 찌푸둥하거나 찜질방이 가고 싶을 때는 그날 밤, 아궁이에 하염없이 장작이 들어간다. 새벽에 더위를 못 이겨 튀어나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도 주말이면 선배네 찜질방이 생각난다.
지난 주에는 들깨를 베어 말리기 시작했고, 지난 6월에 심은 선배의 뭉크논(뭉크의 절규 작품을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의 벼 베기를 끝내고 지금은 논둑에서 나락들이 가을볕에 말라가고 있다. 내일쯤이면 타작을 마치고 따뜻한 햅쌀밥 한 그릇을 배불리 먹을 수 있을 듯 하다.
또 도시에 살 때는 귀차니스트인 내가 문화 강좌라던가 좋은 강연을 찾아다니는데 게을렀는데 이곳에는 더 풍성한 강연들이 있다.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에서는 매달 한두 번씩 명사들을 초청해 문화특강을 연다. 올해만 해도 한홍구, 정태인, 강정구, 박병상 선생님이 다녀가셨다. 그 분들은 시골의 100여 명의 청소년을 만나기 위해 차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강사비를 받고도 흔쾌히 달려와 주신다.
그리고 마을도서관 건립을 준비하는데 사전 강좌로 매주 월요일에는 평생 이 마을에서 교육자로 살아오신 홍순명 선생님의 <농민교양국어>가 열리고 있다. 나는 이 강의를 들으며 부족했던 지적교양을 높이고 있다. 저 머나먼 나라의 프로스트의 시를 읽기도 하고 선생님께서 직접 번역하신 세계의 다양한 에세이와 좋은 글들을 소개해 주신다. 화요일에는 역사학자 백승종 선생님의 <농민의 눈으로 바라본 역사> 공부를, 수요일에는 주중에 한번 내려오는 남편과 함께 <명심보감>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도시보다 바쁜 일정이긴 하지만 이곳은 이 일 말고는 다른 일이 없기에 한 가지 일에 매진 할 수 있어 좋다.
한 가지 안타가운 것은 내가 제 아무리 이 자연 속에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한들, 매일같이 뉴스에서 쏟아지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을 보면 답답함이 밀려온다. 알고 보면 우리의 일인데 조금은 먼 일처럼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그리고 어디선가 열심히 싸우고 있을 그들에게 하염없이 미안해지는 부분이다.
농촌으로 생활권을 변경했다고 해서 힘들거나 불편한 것도 없고, 그렇다고 농부가 된 것도 아니다. 다만 도시를 벗어나니까 매일같이 자연을 만날 수 있어 좋고, 그 속에서도 나도 자연의 일부가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방식은 누구나 다양하다고 믿는다. 같은 삶도, 비슷한 삶도 없다. 그저 나의 삶, 각자의 삶이 있을 뿐이다. 그 속에 수많은 나를 이해하고, 배려해주는 ‘우리’가 존재하면 된다. 그것은 바로 많은 ‘나’가 설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 어디에 살든 나의 삶에 주체가 되어 살아가고 싶다. 내가 지금 이곳에서 살지만 도시가 좋다, 싫다를 평가할 수는 없고 농촌이 좋아, 싫어라고 단정할 수 없는 노릇이다. 지금으로서는 ‘꽤 괜찮은 선택이었어’ 라고 믿을 뿐이다.
하늘의 해가 쨍하고, 가을 하늘이 높고 푸르름을 새삼 확인했다. 매일같이 지는 해를 바라볼 수 있고, 밤하늘의 별이 많다는 것을 보며 고마움을 느껴 본다.
이번 주에는 선배집 구들방에 땔감을 구하고, 들깨를 털어야 한다. 들깨 밭에 모종을 심을 때부터 친구들과 나는 들기름을 몇 병을 짤까 머릿속으로 어리석지만 고소한 셈을 하였다. 인생 뭐 없다면 그저 즐기면서 가리라.
■ 글 : 명랑 길
'마을/공동체/환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내가 도시를 떠난 이유 (0) | 2009/10/22 |
|---|---|
| [강연회] 동네방네 희망찾기 (0) | 2009/10/07 |
| 우리동네 이야기 (0) | 2009/10/07 |
| 생태마을을 찾아간 수원촛불들의 모꼬지 이야기 (0) | 2009/10/07 |
| 진한 커피향과 다림풀 냄새, 주식회사 우리동네를 소개합니다! (0) | 2009/09/28 |
| 수원환경운동연합, 생태환경지도자교육 참가자 모집 (0) | 2009/09/09 |


댓글을 달아 주세요